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알아야 선택할 수 있다.
아는 자만이 활용할 수 있다.
Chat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세상을 점령하면서 대학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글쓰기, 코딩과 같은 분야에서 ChatGPT의 성능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창의성을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짓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식으로 컨텐츠를 연결해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 기술은 당연히 인간의 창의성을 넘어선다.
파이썬 코드, 데이터 분석 역시 ChatGPT가 기가 막히게 잘 한다. 데이터를 굳이 정리해서 줄 필요도 없다. 대충 줘도 알아서 설명해 주고 분석해 심지어 데이터에 대한 함의와 연구 문제까지 제시해 준다. 잘만 이용하면 이처럼 좋은 도구가 없다.
그러나 자신 고유의 생각으로 완성해야 하는 영역에 Chat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학생은 전직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ChatGPT를 이용해서 작성했는데 평소 같았으면 일주일 걸려도 했을까 말까한 내용을 이틀만에 써서 제출을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적 소양의 필요성에 대해 논하라는 과제를 ChatGPT에게 부탁해 초안을 잡고 주제어 별 문장 작성을 부탁한 후 그 내용을 조금 다듬어서 제출했더니 A를 받았다는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심지어 학술 눈문에 ChatGPT가 작성한 내용을 가이드 문구까지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어 투고했는데 출판이 된 경우도 있었다.
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상상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법술은 아니다.
포크레인으로 땅 파는 시대라고 해서 포크레이에게 땅을 내 주지는 않는다. 어떤 땅을 파고 그 곳에 무엇을 할지는 결국 인간이 결정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예측 불가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알아야 선택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의 능력이 인간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정도로 기술은 진화할 것이다. 인간과 자동차의 달리기 경주가 의미 없는 것과 같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업무 능력 비교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포클레인으로 땅 파는 시대라고 해서 인간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땅에는 어떤 포클레인이 필요하고 포클레인의 어떤 기능을 활용해야 땅을 잘 팔 수 있는지를 결정하려면 땅과 포클레인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활용 경험이 필요하다.
기술이 좋아졌다고 배움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아는 자만이 활용할 수 있다.
ChatGPT가 알아서 찾아주고 알아서 답해 주니 앞으로 공부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대학에서 과제나 시험은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할까?
위에서 말했듯, 앞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 암기나 정답 찾기 방식의 공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 단순 암기나 정답 찾기는 기술의 영역으로 넘기고 인간은 문제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